금가락지(金家樂地)팬션/김영택 화백 펜화기행

적의 공격을 50일간 막아낸 난공불락의 구마모토성

청정남 2011. 11. 20. 08:19

 


일본 규슈 구마모토성 천수각

자전거 여행을 하던 부부가 구마모토시 다츠다 자연공원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려 했으나 이미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근처에 다른 문이 있기에 인터폰을 누르고 “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텐트를 칠 장소를 찾는다”고 하자
젊은 여자가 관리인의 반대를 물리치고 좋은 장소로 안내 하더랍니다.
알고 보니 공원이 아닌 호소카와 전 총리의 별장이며,
젊은 여자는 ‘유코’라는 딸로 이들에게 온천에 가자고 초대까지 하였답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는 한반도 식민통치에 대해
‘참기 힘든 고통을 끼쳤다. 우리의 행위를 깊이 반성하여
마음으로 사과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일본 천황과 총리 중 가장 깊이 있는 사과였습니다.
부인 가요코여사는 ‘퇴계선생을 공부하는 모임’의 회장을 하였습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구마모토 번의 영주였던 호소카와 가문의 제 18대 당주입니다.

구마모토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 하였던
가토 기요마사가 1608년 완성한 성입니다.
천수각 외에도 다섯 개의 망루가 있어 ‘난공불락의 성’이라 했습니다.
구마모토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후 호소카와 가문의 영지가 됩니다.
성 건축의 명인 기요마사의 실력은
1877년 ‘세이난 전쟁’ 때 증명 됩니다.
사츠마군의 공격을 50일간 막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천수각을 비롯한 많은 건물이 전쟁 중에 불타버립니다.
현재 천수각은 1960년 복원한 것입니다.
일본 3대 명성입니다.
펜화는 세이난 전쟁 때 사진을 참고로 고쳐 그렸습니다.

* 중앙일보 칼럼에 사진과 설명을 더하여 보내 드립니다.



해자.
물이 줄어 연못처럼 보인다.



호아데고몬 문



좌측 건물이 우토야구라 망루



성벽
성벽위에 앞뒤가 막힌 데다 지붕을 올린 회랑을 지어 공격군이 쳐들어갈 빈틈이 없다.



성 내부의 통로가 구불구불하여
방어하는 군사는 높은 성 위에서 공격군을 공격하기 쉽다.
이런 구조도 일본 성의 특징이다.



천수각의 뒷모습



우토야구라
가토기요마사와 대립하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할복 한 후
그의 가신들이 근무 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
이 망루를 통해서만이 성벽위 회랑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엽서에 많이 나오는 구마모토성의 전형적 구도
전형적인 사진의 특성이다
펜화로 그리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혼마루고텐의 통로



창을 들고 유모차를 잡고 있는 것이 참 잘? 어울린다.

하기사 유모차를 끌고 데모도 하는 한국의 엄마들도 있으니...

유아용 방독면을 만들면 대박 날것 같다 



돈을 주고 사진을 찍는 줄 알고
슬쩍슬쩍 도촬을 하였는데
알고 보니 무료란다.
머리가 나쁘면 양심이 고생을 한다 ㅋㅋㅋ
이런 줄 알았으면 함께 기념사진이라도 찍는 건데 ㅎㅎㅎ



장수의 복장을 하고 있으나
왜 이리 인기가 없을까?



사병
알바생 이라는데 참 잘 생겼다.

일본 남자 중에는 미남이 많다



특이한 모양의 창



천수각 용마루 좌우 끝에 올리는 샤치호코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의 구조 모형



천수각의 단면도
천수각은 일본의 목조 건축 기술의 결정체다



천수각 정면. 왼쪽이 대천수 오른쪽이 소천수.
구마모토성은 호소카와 가문 소유 였으나
국가에 헌납 하였다.
단 하나 남았던 나고야 이누야마성도 헌납하여
이제 일본에 개인 소유의 성은 없다.
일본에는 기차 노선, 도로도 개인 소유가 있다



장군의 갑옷
가운데 장군의 문양이 호소카와 가문 문장이 아닌 것을 보면
가토 기요마사의 갑옷이 아닐까?



포탄
오른쪽은 포탄의 파편



장총과 칼.
명치유신 때의 일본은 각 번 별로
최신식 무기 수입과 개발이 대단 하였다
기관총까지 등장하였다.



천수각에서 내려다 본 구마모토시



천수각에서 내려다 본 내성과 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