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락지(金家樂地)팬션/김영택 화백 펜화기행

유수성중관풍루를 아십니까 ?

청정남 2011. 6. 2. 07:10

 

 

유수성중관풍루를 아십니까 ?

 

 


석파정 안 유수성중관풍루

서울 속의 호젓한 산골
흥선대원군이 탐낸 정자

창의문을 자하문(紫霞門)이라고 합니다.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붙인 별칭입니다.
자하문 밖에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삼계동 정자’가 있어
한양 제일이라 했습니다.

소치 허유 화백은 ‘산은 깊고 숲은 울창했으며
정자와 누대의 경치는 흡사 신선의 별장 이었다’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사랑채인 현대루와 부속 건물인 중국식 벽돌건물, 월천정, 육모정에
수각(水閣)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 수각이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楓樓)입니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단풍을 볼 수 있는 누대’라는 멋진 이름입니다.
화려한 투각판을 귀퉁이마다 세웠고,
지붕에는 동판을 붙인 청나라식 정자입니다.
소치는 ‘계곡 위 샘물을 수각 아래로 흐르게 하였는데
족히 수천금이 들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김흥근이 정성을 들인 정자였습니다.
정자는 깊은 산골처럼 호젓하여 세상을 잊게 만듭니다.

이 별장에 눈독을 들인 대원군이 술수를 써서 손에 넣습니다.
이름도 자신의 아호를 따서 ‘석파정’으로 바꿉니다.
후손에게 대물림 되던 정자는 주인이 바뀐 후 훼손이 됩니다.
1958년 서예가 손재형이 사랑채 부속 건물을 사서
계곡 아래 자신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지금은 석파랑이란 식당의 별채가 되어 석파정과 헷갈리게 합니다.

석파정은 개인소유로 출입이 어렵습니다.
이 칼럼을 보고 찾아가시면 헛걸음 하게 됩니다.

한국펜화가협회 창립전이 6월 3일부터 8일까지
남대문 ‘알파갤러리(3788-9498)’에서 열립니다.

* 석파정은 개인소유라 취재가 불가능 합니다.
관계기관의 소개로 취재를 했습니다.

보기 힘든 귀한 사진이라고 해도 됩니다.



석파정의 사랑채와 안채, 별당의 모습입니다.
정면이 사랑채, 그 오른쪽이 안채로 ㅁ자 형태고
안채 뒤 건물이 별당입니다.

석파정은 6.25 동란때에는 고아원이었고

그 뒤 여러 주인을 거쳤습니다.



사랑채로 이름이 ‘현대루’입니다.
높은 기단위에 지어서 위엄이 있습니다.
마루에 서서 “에햄, 게 아무도 없느냐” 할 만 하지요.



안채의 안방과 마루, 부엌이 보입니다.
별장이라 했지만 모든 건물을 갖추고 있어
살림에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별당으로 올라가는 문.



이런 담과 문을 화초담이라 했습니다.
전돌 뿐만 아니라 학 문양도 흙을 틀로 찍어 구운 것입니다.
그 사이에 흰색 강회를 채워 넣었습니다.



별당에서 내려다 본 문



별당입니다.
높은 곳에 지어 전망이 죽여줍니다.
석파정 안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곳입니다.



별당채 문으로 독립적인 공간이 되도록 했습니다.
예쁜 첩을 두면 ‘별당마님’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사랑채 옆 소나무로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 60호 입니다.
소나무 오른쪽 마당에 중국식 벽돌로 지은 사랑채 부속 건물이 있었습니다.
부속건물을 1958년 서예가 손재형이 사서
계곡 아래 자신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옮겨간 부속 건물의 1920년대의 모습을 펜화로 재현했습니다.



김흥근 대감이 별장을 ‘삼계동 별장’이라고 했던 때
암벽에 새겨 놓았나 봅니다.

대원군은 이곳을 얼마나 좋아 했는지
자신의 아호를 ‘석파’라 짓고 삼계동 정자를 ‘석파정’이라고 바꿉니다.
‘석파’란 삼계동 정자에서 본 북한산의 바위연봉이 파도치듯 보인다고 지은 것입니다.
대원군이 석파정을 얼마나 좋아 했는지 알 것 같지요?

참 살아있는 권력이 좋은 것입니다.
전직 영의정의 정자도 빼앗을 정도이니...



사랑채 앞 계곡을 따라 오솔길이 있습니다.
석파정은 면적이 1만 3천평 입니다.
서울시내에 이정도 넓이의 개인소유 땅이 드믈 것입니다.
현재 ‘유니온제약’이 주인이랍니다.
석파정 입구 암반을 까내어 흉하게 방치 되었던 곳에
‘석파문화원’을 짓는 답니다.

 

석파정은 터가 쎈곳으로 유명합니다.

산 사람마다 망했거든요.

이번 주인은 터의 기를 눌러서 좋은 문화 마당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솔길 끝에 특이하게 생긴 정자가 있으니
바로 ‘유수성중관풍루’입니다.



정자의 기단은 회색 전돌이며
화강석으로 진입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작지만 무척 공을 들인 건물입니다.



장주석을 자연 암반에 세워서 무척 튼튼해 보입니다.



정자에서 본 뒷쪽 슾



석파정 골짜기 위에 샘이 있습니다.
샘까지 있는 터, 참 대단한 별장입니다.



샘물 발원지 쪽에서 본 정자
깊은 산골에 온 것처럼 컴컴합니다.



손재형이 석파정에서 사서
홍지동 125번지 자기 집에 옮겨 놓은 ‘사랑채 부속건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23호로 이름을 ‘대원군 별장’이라고 붙여 놓아
석파정과 헷갈리게 합니다.
설명문은 더 헷갈리게 합니다.
‘사랑채 부속건물’을 ‘부속 사랑채’라 해서 사랑채로 착각하게 하였고,
‘대원군 별장은 33m2의 작은 집 한 채 뿐으로...’하는 글로
대원군 별장이 작은 집 한 채가 되어 더 헷갈리게 합니다.
이름을 ‘석파정의 사랑채 부속건물’, 또는
‘대원군 별장 사랑채 부속건물’ 이라고 하면 모든 오해가 풀립니다.



부속 건물의 측면.
내가 그린 복원도와는 다릅니다.
옮겨 지으며 디자인을 바꾼 곳이 많습니다.



아름다운 원형 창.
붉은 색 문양도 구운 것입니다.
1958년이면 6.25동란 후인데 어디서 이런 전돌을 만들었을까요.
헐어 옮겼지만 벽돌 건물은 옮길 때 새 벽돌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부속 건물의 전면
김흥근 대감이 소치선생을 묵게 하였답니다.



부속 건물 전면 우측의 반원형 창.
뛰어난 솜씨로 전돌을 쌓고 문양을 넣었습니다.



부속건물에서 본 한정식당  '석파랑' 안마당
소전 손재형 선생이 얼마나 아름답게 지었는지 잘 보입니다.
손재형 선생은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습니다.

일본에 있던 ‘세한도’를 애걸복걸하여 찾아 온 분입니다.
세한도는 추사 김홍도의 작품으로 국보 중의 국보입니다.
돈으로 따질 수가 없습니다.

아마 500억 쯤 불러도 살 사람이 여럿일 것입니다.

손선생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빚을 많이 져서
세한도도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이 건물도 남의 집이 되었습니다.

 

정치가 얼마나 좋기에 어렵게 찾아온 '세한도'와 공을 들여 지은 집을 담보로 빚을 낼까요?


이 건물을 산분이 한정식당으로 만들면서 ‘석파랑’이라는 상호를 붙이는 바람에
‘석파정’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석파정과 석파랑은 전혀 다른 건물입니다.

석파정이 진짜 대원군 별장입니다.




식당 '석파랑' 마당

왼쪽 문이 헐리게 된 대비의 사저에서 옮겨온 문.
우측 언덕 위 건물이 석파정에서 옮겨온 ‘대원군 별장 사랑채 부속건물’ 이구요



석파정은 결혼 전 상견례 장소로 유명합니다.
음식의 맛과 식대는 모릅니다.
직접 가서 알아보세요.
사전 예약해야 됩니다.

* 인도에서 돌아 왔습니다.
최고 기온 46.8도, 8박 9일 동안 고생 좀 했습니다.
5~6월 인도는 알고는 못갑니다.
대신 사람이 없어 사진 찍기 좋았습니다.
6월 16일자 중앙일보에 인도를 보여 드립니다.


6월 15일부터
인사동 라메르갤러리(20-730-5454)에서 스케치 작품전을 엽니다.
이 나라 저 나라 취재 때 틈틈이 그린 스케치작품으로
모두 원화 소품입니다.

가격은 1백만원으로 통일입니다.

읽찍 동날지 모릅니다. ㅋㅋㅋㅋ 
7월 5일까지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