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커피가 생각나면 - 오광수
한잔의 진한 커피가 생각나는 날
이왕이면 펄펄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이라도 본다면
잊었던 기억 속의 좋은 모습이라도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이제는 빛바랜 앨범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보아도
사진 속에 있는 얼굴들은 먼 타국사람 같고
무엇이 저리 좋아 웃고 찍었을까?
생각마저도 희미하다.
한잔의 진한 커피가 생각나는 날
이왕이면 멋진 카페에서 마시면 좋겠다.
그 시절에 들었던 노래라도 들으면
내 앞에 앉았었던 어느 사랑이라도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이쪽 저쪽 둘러보아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고
무엇이 저리 좋아 웃고 얘기할까?
이방인같이 씁쓸하다.
그러나 진한 커피가 생각이 나면
내 아내와 서재 책상에서 마셔도 좋겠다.
창밖에는 눈 오고 앨범까지 보면서
그 시절 연애할 때 듣던 음악 틀으면
아내는 정말 좋아하겠지.
이제는 얼굴도 닮아가는데
이 손 저 손 만져가며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면 딱 괜찮을 것 같다.
무엇이 저리 좋아 웃고 들어올까?
내 마음까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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