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락지(金家樂地)팬션/김영택 화백 펜화기행

김영택 화백 펜화기행(63)-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를 보셨습니까.

청정남 2011. 1. 4. 09:45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를 보셨습니까?...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가 순천 선암사에 있습니다.

이름도 참 멋있습니다. ‘신선이 되는 다리’라는 뜻의 승선교(昇仙橋)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 선암사에 가서 도를 닦으면 부처가 된다는 의미지요.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 생활이 궁핍해진 절에서는 스님이 목수가 되어 법당을 짓습니다.

직접 기와도 굽고, 단청과 불화도 그립니다.

쇠를 녹여 범종을 만드는 스님에 돌다리를 쌓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선암사 호암 스님이 숙종 39년(1713)에 세운 승선교는 잘 만든 돌다리로

보물 제 400호 입니다.

높이 7m, 길이 14m, 너비 3.5m로 무척 큽니다.

양쪽 기단을 천연 암반에 두고 훌륭한 솜씨로 쌓았기 때문에

폭우에 계곡 물이 범람하여도 끄떡없습니다.

앞뒤의 잡석만 쓸려 내려갈 뿐 장대석으로 쌓은 홍예 틀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벌교 홍교도 기술을 전수받은 호암 대사 제자 스님들의 작품입니다.

승선교를 제대로 보려면 계곡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사진 찍기 좋은 너럭바위에서 보면 다리 밑으로 보이는 강선루(降仙樓)와 승선교가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강선루는 작은 개울 위에 지었습니다.

왜 멀쩡한 자리를 두고 위태로운 자리에 지었을까요.

혹시 멋을 아는 스님이 그림과 같은 구도를 위하여 터를 잡은 것은 아닐까요.

* 중앙일보 12월 30일자 칼럼에 사진과 설명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茶來軒에서 김영택 올림




승선교 전에 만나는 작은 승선교는 큰 승선교와 같은 방식으로 만든 다리입니다.



절 쪽에서 본 승선교



계곡 아래 반석에서 본 승선교와 강선루



2001년 5월에 그린 승선교와 강선루
요즈음에는 스튜디오에서 3주 정도에 펜화 작품 한 점을 그리는데
2001년에는 현장에서 이틀에 한 장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엉터리 입니다.

당시 승선교는 암반의 균열 현상 등 위태롭게 되어
2003년 11월부터 완전 해체하여
홍예석 중 노후하여 부식이나 균열이 생긴 석재 30여개를 교체하여
2004년 6월 복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해체하기 전 모습을 보여 줍니다.
홍예석이 들쑥날쑥한 모습이 보이지요?
이때 모습이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승선교를 지나 만나게 되는 강선루.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다는 뜻이니
루에 오른 손님을 높여 부르는 의미이지요.
일주문에 이르기 전 풍치 좋은 곳에 2층 루각을 세운 것은 드믄 일입니다.
찾아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선암사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계곡에서 본 강선루
주춧돌인 장대석을 개울에 세우면서 까지 강선루를 개울 위에 세운 이유가 무었일까요?
풍수상 좋은 터였을까요. 아니면 개울을 건너는 다리 위에 세워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림처럼 아름다운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였을까요.
다음 주까지 리포트 제출 하세요.
과제 제출 안하면 혼을 낼 거예요.
나는 서울시 교육청 소속이 아니라 체벌도 합니다.




일주문
선암사는 신라 헌강왕 1년(서기 875)에 도선국사가 창건 하였고,
고려 선종 9년(1092)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중창 하였다고 합니다.



일주문은 절의 얼굴이기 때문에 공포를 화려하게 짜서 만듭니다.
현판 글씨 배치도 특이 합니다.



범종루 밑으로 올라와야 절 마당이 나옵니다.
건물 아래에 기념품 가게를 만들어 답답해 졌습니다.



대웅전과 보물 제 395호 3층 석탑 2기



T자형 건물로 원통전이라고 합니다.
안에 말썽 많은 부처가 계십니다.
‘본래 있었던 부처를 00스님이 수십억에 팔아먹고 새로 만들어 놓았다.’는 스님과
‘아니다. 옛 부쳐 그대로다’라고 주장하는 스님이 있는데
전문가가 감정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쉽게 해결이 되지 않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얼마 전 부처가 갈라져서 또 말이 많아졌습니다.
오래된 불상은 쉽게 터지지 않거든요.




원통전 꽃살문
꽃살문은 통판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것입니다.
국내에 몇 개 밖에 없는 걸작 입니다.



장경각



장경각 계단 소맷돌의 조각이 특이 합니다.



점심을 절에서 해결하였습니다.
김치에 파, 마늘을 쓰지 않아서 맛이 좀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절밥은 언제나 맛있는 법입니다.



짜임새와 격식을 갖춘 공양간.



식사 후 해봉스님께서 차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 유명한 달마전 뒤뜰 석조



달마전은 스님들의 선방이고 요즈음 동안거 중이라 들어 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해봉 스님이 휴식 시간에 잠깐 출입을 하락 받아주어서 촬영을 했습니다.
해봉 스님과 기념사진 한 장 ‘찰칵’
“고맙습니데이_”



낙엽이 쌓인 법당 지붕
‘아, 시한 수 쓰고 싶어지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작품 사진’이 아닙니까.



남도 취재에 동행 한 강한영 회장님.
한국 애니메션계의 전설이며 광고영화의 전설이었습니다.
현재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패스티벌) 조직위원장 입니다.
38년 전 첫 직장에서 함께 근무 하였는데 그때에도 수염이 있었습니다.
참 멋쟁이로 선우앤터테인먼트 회장입니다.



선암사는 다른 절과 다르게 푸근한 인상을 주는 절입니다.



선암사 주변에는 야생차나무가 지천 입니다.
비료와 농약을 주지 않은 선암사 차는 맛 좋기로 유명 합니다.
범종루 아래 기념품점에서 살 수 있습니다.



차밭에 잡석으로 조형물을 세워 놓았습니다.



선암사 해우소(화장실)을 ‘뒤깐’이라고 합니다.
글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써 놓아서
농담으로 ‘깐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시설이 특이 하여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분 만 일을 볼 수 있습니다.
경험 없는 여성이나 어린이들은
‘나오던 ㅇ이 도로 들어가는 공포체험‘을 하게 됩니다.



해우소 뒷면이 무척 높습니다.
밑바닥이 워낙 깊어서
‘선암사 해우소에서 큰일을 보고 절을 나가서 다리를 지나면
그 때서야 “철푸덕”하고 변이 해우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식사 때는 이 메일을 열어보지 마세요.)



산신령을 모신 산신각은 워낙 좁아서 스님이 밖에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 앞에 지붕을 씌워 T자형 건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현판도 있네요.
해천당은 한 때 객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취재를 와서 몇 번 묵었던 곳입니다.



가운데 삐딱하게 서 있는 비석이 승선교를 만든 ‘호암대사비’ 입니다.
스님이 출가한 묘향산 절을 향해 비석을 세웠답니다.
호암 스님이 입적하자
큰 스님이 만장(輓章-죽은 스님을 애도 하는 글을 적은 기)을 하늘 높이 던지자
만장이 날아가 묘향산 절 마당에 떨어졌고,
이를 본 묘향산 스님들이 밤낮없이 걸어서 7일 만에 선암사에 도착하여
다비식을 치루었답니다.
편지나 전보, 전화, 인터넷도 없었던 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면 왕복에 한 달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아니 의심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진짜 라니까요.”
'믿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의 것'이라고 하는 말씀도 못들어 보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