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의 자화상
이모님의 자화상
누구나 모임이 많다 보면 스케줄이 겹치는 경우를 많이 볼수있다.
6촌형님이 8월27일~28일 벌초를 한다고 통보를 주셨지만
하필이면 중요한 모임이 벌초 하는날과 겹쳤다.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 유원지에서 모임을 하였지만 대부분이 토요일과 일요일이
벌초를 하는 날이라 회원들 대다수가 참석을 못 하였다.
그래도 회원들이 성의를 표시하여 20여명은 참석하였다...
나도 벌초를 하러 지방에 내려가려면 늦지않게 빨리 서둘러야 한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할수없이 아들에게 유원지까지
내비게이션을 찍고 오라고 하였다.
지방에 내려가는 시간을 절약하려고 아들에게 이야기하였지만
날씨가 모처럼 좋아서 그런지 유원지 입구까지 왔다고
전화를 줬는데도 한참 걸린다...
나는 마음이 급하여 점심만 해결하고 식구들을 기다렸다.
식구들이 늦게 도착하여 시간 절약상 우리식구들도
회원과 같이 유원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늦게 출발 하였다...
(오늘 벌초를 끝내고 시골 이모님댁을 방문 하였다...)
벌초는 이미 6촌 형제들이 끝내고 거의 밤10시경
시제를 모시기 직전에 도착 하였다.
맞 벌이를 하는 가정이 늘어나 시제 음식장만과 차례를 치르는 문제로
벌초가 끝나고 회의를 할때면 형제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전에는 당숙모,형수님, 제수씨,등 많은 여성들이 참석을 하여
도와주었지만 언제 부터인지 협조가 안돼
여성들의 참석률이 아예 없다...
( 2년만에 방문한 이모님의 집 입구에 오래간만에 고추가 널려있다...)
이상하게 회의를 할때 약주가 들어가면 서로간의 목소리가 커진다...
왜, 형수님은 참석 안 하시냐?..
왜 제수씨는 참석 안 하시냐?...
이번에는 나 부터라도 생각을 바꾸려고 내 처를 설득하여
시골 벌초에 참여하고 시제 준비를 도와 주었다.
6촌 여동생이 무순죄를 지었다고 몇년을 시제 준비하는라
힘겨운 뒷 받침을 한다,...
지난번 시제때도 어른들의 무 분별한 싸움에 우리 자식들에게
산 교육을 시키려다오히려 자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게하여 부모로서 도리를 못했다.
나는 집안에서도 듣는 입장이고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
의견을 내면 술을 잡수시고 횡설 수설...
자식들도 성인이 될때까지 시제참석을 보류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참석 하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계속 되풀이 된다...
( 소를 키우던 우사가 있던 자리...)
오래간만에 가족을 데리고 교육상 시골에 내려왔지만
이번에도 마음의 상처만 남는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도 내 처는 승균에게 미안 하였다고 하면서
이제는 결혼이나 하면 시골에 내려오자고 한다...
나 역시 내가 잘한다고 집안 어른들의 술버릇은 못 고친다...
나야 나이가 어려 회의가 있으면 듣기만 하지만
연세가 지긋한 어른들이 술만 드시면
목소리가 커지고 서로가 이해를
못 하신다...
서로가 주장만 내 세우니 이번에도 합의 없이 끝난다...
( 이종 사촌 동생도 때마침 벌초를 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술을 드시고 싸움을 하고있는 장소에는 피하는게 상책이다...
좋아하는 6촌 형님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형수님께서 지어주신
맛있는 아침을 해결하고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다닌다...
당숙모.동생.형님,등 신권으로 바꿔 가지고 간 새 돈으로
약간의 용돈을 드리고 이모님댁으로 향한다...
(이모님께서는 낡은집은 비워두시고 새롭게 조립식 주택에서 거주 하신다...)
마침 이모님께서 특유의 쩌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신다...
외가는 이제 이모님 한분만 생존해 계신다.
늦었지만 이모님께 신경을 쓰고 살피려,
처와 식구들을 데리고 방문 하였다.
그 어렸을적 마을 동구밖에서 "이모님!! "하고 부르며
이모님을 향하여 뛰어갔던 이모님댁의 입구는
성장하여 성인으로 보는시선으론
작다는 생각이 든다...
(여든이 훨씬 넘으신 이모님께서 이제는 체력이 딸리시니 마당에서 파를 심으셨다...)
다행이 30분정도 걸리는 전주에 이종사촌 둘째동생이
3년전에 내려와 거주하니 자주 이모님을 봬니
마음이 약간은 놓인다...
(이모님께서 돌아가시기전에 이모님의 자화상을 찍었다...)
이모님댁을 방문하니 이모님께서는 아직도
목소리는 쩌렁쩌렁 하신다.
동생을 시켜 사진을 찍으니...
"일곱 형제중에 내가 제일 못생겼어, 그런데 내가 제일 오래살아..."
" 승균이 할머니만 살아 있어도 오손도손 이야기 하며 얼마나 좋것냐,"
"너의 엄마는 미인이야! 너무 잘 생겨서 달 처럼 이뻐 달순이라고 지었어!..."
( 늦둥이를 낳고 처음으로 이모님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나를 만나거나 내 처를 만날때 항상 말씀 하시는 레퍼토리다...
이모님 둘째 아들이 3년전에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이모님께서는지난번에 뵐때 보다
얼굴이 좋아 보이신다...
노인들의 건강은 잘 먹고 잘 입는것보다는 주위에서
관심을 가지고 들어 주고 대화 하는것이
장수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 하은이가 이쁘다고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점심을 사 드릴려다 아들 내외가 있으니
손에 용돈을 쥐어 드리고
안심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어머님을 보고싶으면 이모님을 보라고 누가 말 했던가?...
일찍 돌아 가신분만 불쌍하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할아버님 내외.아버님내외,큰아버님,형님의
묘소가 있으니 오기 싫어도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시골에 한번은 내려와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행동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기싫어도 책임과 의무감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매년 백만원을 신권으로 가지고 갔던 시골길이
이제는 돈이 남아 가지고 올라온다..
갈수록 효도대상의 어른이 돌아가시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어른들께서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시는 것은
이제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오늘 이모님의 자화상을 보니 어릴적 일찍 돌아가신
어머님의 자화상을 보는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한켠으로는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