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락지(金家樂地)팬션/김영택 화백 펜화기행

김제 금산사 미륵전-김영택의 펜화기행(59)

청정남 2010. 9. 14. 07:46

제목: 김제 금산사 미륵전
분류: 칼럼
이름: 8.김영택






1920년경의 사진과 1950~60년경의 사진을 이용한 그림입니다.
내 그림을 관리 해주는 디자이너에게 부탁하여 Tiff로 된 그림의 용량을 줄이고
Jpg로 바꾸어서 보내 달라고 하여 올렸습니다.
금산사 사진들은 내일 연구실에서 올리겠습니다.



절 입구에 있던 당간지주가 절이 넓어 지면서 경내에 서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금강문은 근래에 세운 건물입니다.


천왕문도 새로 세운 건물입니다.


좌측 사천왕이 광목천왕으로 서쪽을 수호하며 부하로 비사도가 있습니다.
오른쪽이 다문천왕으로 탑을 들고 있고 부하로 야차와 나찰을 데리고 북쪽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천왕
왼쪽이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으로 비파를 들고 있습니다.
부하로 부단다와 건달바가 있습니다.
오른쪽은 칼을 든 증장천왕으로 남쪽을 지키고 부하로 부단나와 페레다가 있습니다.
의문이 드는것은 불국토가 하늘에 있다는데 2차원 방위개념 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적광전은 근래에 불에 타서 새로지은 건물입니다.


대적광전 안에 배치된 불상


노주라고 하는데 여러개의 석물을 모아 놓은것으로 보입니다.


나한전


나한전 내부의 석가모니불과 500나한상


대장전 지붕에 올려진 상륜부는 대장전이 과거에 목탑이었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터도 정 사각입니다.



불상보다 다소 커 보이는 광배가 대단한 걸작입니다.
광배의 화염은 부처님의 후광을 상징하는 것으로 목조 조각입니다.
부처님 오른쪽이 수제자 가섭이며 왼쪽이 아난입니다.
나한전에도 같습니다.



다층탑. 탑신 여러개가 없어져 제 모양을 상상하기 어려우나
무척 섬세하고 아름다웠으리라 봅니다.



미륵전 좌측에 방등계단과 5층탑이 있고 그 오른쪽에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미륵전 내부에 우뚝 서 있는 장륙상.
사진 오른쪽 협시불이 보수중입니다.



적멸보궁 안에서 본 방등계단과 석종


적멸보궁 내부.
건물 뒤에 부쳐님의 사리탑이 있기 때문에 불단에 부쳐님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통도사 대웅전에도 부처가 없습니다.



방등계단.
통도사에는 금강계단이라고 합니다.
스님에게 계를 내릴 때 이용하기 때문에 계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방등계단의 주변에 배치한 사천왕상.
아름다운 조각품입니다.



5층탑과 풍경


풍경


1920년대의 미륵전 사진

 

                       금산사 미륵전


‘하인에게 영웅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이 들에게는 영웅으로 보이더라도 하인이 보기에는 밥 먹고 똥 싸는 보통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종교 창시자도 살아있을 때에는
‘스승’ 또는 ‘영적 지도자’로 존경을 받아도 신으로 추앙받은 경우는 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스승이 죽은 후 세월이 흐르면서 스승의 이름을 넣은 ‘00교’가 생기고,
스승은 ‘신’으로 추앙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종교는 스승이 말씀한 진리에서 차츰 변질되어 갑니다.
또한 성직자들의 필요에 따라 경전이 바뀌고 짜깁기 되며 새로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기독교 연구 학자들은 예수 사후 가장 가까운 시기에 기록된 경을 찾아
성경의 복원을 꾀하고 있으며,
마찬 가지로 불교에서도 똑같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석가모니 사후에 제자들 간에 다툼이 생깁니다.
공양으로 받은 소금을 ‘썩지 않으니 보관하자’는 주장과
‘스승의 지시대로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시주 받는 문제로 제자들 간에 큰 다툼이 생기기도 합니다.
철저하게 ‘무소유’로 사셨던 석가모니가 지금의 불교를 보면 기절초풍을 하시겠지요.
이런 변질은 불교 뿐만이 아니지요.

 
   스승은 자기 모습으로 상징물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복신앙의 대상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불가에서는 이를 두고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왜 손가락을 보느냐”고 합니다.
석가모니 사후에 오랫동안 불상이 없었던 것은 부처님의 뜻이었습니다.

 
   기업에 심벌마크가 필요하듯이 종단에도 포교에 효과적으로 쓸 상징물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유언을 어기고 스승의 모습을 상징물로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본래의 모습과 전혀 다른 얼굴로 성형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인 예수는 서구형 미남이 되며 석가모니의 귀는 어깨까지 늘어납니다.
전파되는 국가에 따라 얼굴 모습과 복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부처님도 중국을 거쳐 우리 땅에 들어오며 얼굴 모습이 달라집니다.
우리민족에게 친근한 얼굴이 된 것입니다.

 
   김제 금산사(金山寺) 미륵전에 모신 장륙상 중 본존 미륵상은 참 잘 생긴 한국인의 얼굴입니다.
키가 11.8m로 4층 건물 높이와 맞먹을 만큼 큽니다.
좁은 법당 안에서 머리를 한껏 뒤로 젖혀야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높이 18.91m인 미륵전을 밖에서 보면 3층이지만 내부는 터져있는 통 층 건물입니다.
금산사 미륵전은 국내에 단 하나뿐인 3층 법당으로 국보 제62호입니다.

 
   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에 금칠을 한 본존불은 1934년 불에 타서 1938년 석고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요사이 좌측 협시불이 습기로 흙이 무너져 내려 복원을 하는 중에
몸 안에서 복장 유물인 후령통이 발견 되었습니다.
비단에 쌓여 있는 지름 11cm, 높이 15cm의 원통형 후령통은
엑스레이 검사 결과 내용물이 들어 있는 것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확실한 보존처리 방법이 나온 후에야 내용물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륵전 옆 언덕 위에 2단으로 쌓은 방등계단은
통도사 금강계단과 같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입니다.
지붕 용마루 위에 목탑 상륜부 장치가 튀어나온 대장전에 모신 석가모니불의 광배를 눈여겨보세요.
대단히 잘 만든 광배입니다.

 
   본 그림은 방등계단의 석축이 고쳐지기 전 모습입니다.
1920년대에 찍은 사진에는 미륵전 현판 하나만 있었으나 아래 두개의 현판은 그 뒤에 추가된 것입니다.
1층 대자보전(大慈
寶殿)과 2층 용화지회(龍華之會)는 미륵전과 같은 뜻입니다.


*중앙일보 내일(20일자) 에 나갈 펜화기행 내용에 글을 추가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