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나그네
(김수철-나그네)
나그네 (대금) - A Wonderer - 김수철
연주곡입니다.
(오늘 작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죽은 고종사촌 동생을 생각 한다...)
피곤한지 너무 머리가 아파서 견딜수가 없어서 오후3시쯤에 잠깐 눈을 부쳤습니다.
중간중간 깨었지만 비몽사몽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오후7시18분쯤에 깨어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비몽사몽한적도 없었지만 너무 늦어 퇴근하려고 서두르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생명을 건진 고종사촌 동생에게서요...
잠시 누나를 바꿔주더니 누나에게서 청천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종사촌 동생이 죽었다고요....
심장이 멎는줄 알았습니다.
얼마전에 동생이 오토바이사고가 나서 힘들었고 친엄마이신 고모님이 돌아가신지
15일만에 줄초상이라니...
제 처에게 상가집에 간다고 이야기 하니 한참있다가 전화가 오데요...
내 심정을 알지만 너무 놀랐으니 나를 봐서라도 내일 가라고...
금요일 새벽에 하던일을 접고서 동생이 다니던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상가는 초라하게 상 서너개 놓는 가장구석진 장소였습니다.
새벽이라서 옆의 상가는 발인을 하고 비워있었지만 결혼한지 2년만에 별거..
자식도 없고 이혼도 안하고 헤어져12년을 별거생활....
명문고와 좋은대학을나와 사법고시를 보지만 아깝게 매번 2차에 낙방....
결국에는 친 조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조카에게 축하한다는 축전을 보내고
사법시험을 접고 성격에도 맞지않는 보험설계사를 하였습니다.
자칭 재야 변호사라고 무보수로 많은 이를 도와주고 본인은 실속없이
고시텔에서 월 23만원 세를 두달치나 밀리며 좁은 구석에서 살았던 동생....
죽은후에 고시텔에서는 몇가지의 옷과 심장약, 간장약이 발견 되었습니다...
집안 식구들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저에게는 자주 찾아와서
형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주의 자라고 추겨세워주던 동생 이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동생의 뒷 처리를 마무리 짓고 동생에게 알려주려고 방문하다
동생이 입원한 병원 일층에서 갑자기 쓰러져 심장이 터져 죽었다고 합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개도 얼씬 않는다고 하는데....
제가 형에게 문상객 접견실을 옮기자고 건의하였습니다.
동생이 죽은뒤에 오시는 문상객이야말로 진정한 동생의 친구이자 동료들이니
정성스럽게 맞이 하자고요...
설령 돈이 모자란다고 하면 제가 댈 용의가 있었으니까요....
평소 자기이름 브랜드값은 백억이 넘는다고 큰소리 치더니 맞았습니다...
줄초상이 나서 핸드폰에 적힌 이름을 찾아 전화 몇군데 하였더니...
금요일 밤에 친구 동료등 문상객이 상당히 많이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실에는 실패했지만 죽은뒤의 동생 뒷모습....
제 자신이 부럽더라고요.
제 동생이자 친구가 죽은뒤의 관 한 귀퉁이를 들고 성남 화장장까지 가서
배웅하였습니다....
자손도 없고 형님과 누나들도 있지만 유골을 어찌할것인지 고민하기에
화장한 유골을 제가 걷어 저의 집앞 임진강 강가에 유골을 뿌리고
술을 따라 넋을 위로하며 저의 가슴에 묻었습니다.
티브이 에서나 보는 현실이 저에게 닥쳤습니다.
토요일인 21일 그날 따라 맑디맑은 임진강가에서 하얀 장갑을 끼고 유골을 뿌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동생의 넋을 위로하였습니다.
세상의 풍파와 맞서다 현실과 동떨어지게 살다간 풍운아...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고뇌하며 살다간 동생....
이제부터라도 형(나)의 조언을 받아 일단 현실주의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였던 동생...
동갑이지만 제가 생일이 4개월 빠르기에 형이자 친구인 제가
생의 마지막길을 배웅 했습니다...
학교 다닐때의 친구는 자기보다도 못했지만 동생 친구들은 벌써
지검장으로 나섰다는 고뇌의 목소리 지금도 선합니다...
연천 집을 지을때 상량식때 돼지머리에 돈을 올리고 나의 복을 빌면서...
저 보다도 좋아 하면서 술을 거나하게 먹던 동생...
내가 만약에 죽으면 이 집터에라도 유골을 남기고 싶을 정도로 애착이 간다고
동생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나를 부러워 하면서 자기도 여유만 있다면 이런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
평소 이야기를 하여 제가 임진강에 뿌려 혹시라도 형,누나들이 여유가 생길때
강가에 와서 소주 한잔 올리는것이 위안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월요일 삼우제날 저 혼자 임진강에 올라가서 소주 석잔을 올리고
큰절을 두배 올리며 임진강가에 뿌린 과자가 서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이
내눈의 시야에서 사라지는것을 보면서 ...
마지막으로 배웅을 하고 해가 석양에 사라지는 광경을 보면서 내려왔습니다...
4월6일 어제 한식일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작년에 49살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종 사촌 동생의 첫 기일 이라 일부러 몇개월만에 차를 운전하고 나왔다...
봄날이라 서소문 공원 주차장의 많은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려는지 한껏 자태를 뽐낸다...
(제물을 놓을 바위를 20여미터 밀고 굴려 오는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이름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사법시험을 공부하며 나와 같이 몇개월을 보냈었다..
1차에는 합격 하는데 2차에 번번히 고배를 마시며 술을 마시면서 고뇌하는 모습이 가끔 생각난다...
(강가에서 줌을 하여 찍었지만 정자인"曲水亭이 풀잎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동생을 잊지않기 위하여 고종사촌 모임을 가지면 정자에 술이라도 한잔을 따르며 위로 할것이다..
강가에 유골을 뿌리면서 장소를 잊지않기 위하여정 가운데 높이 솟아난 나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뿌렸다...
큼지막한 돌들과 자갈이 많이 깔려있어 겔로퍼가 강가에 내려 가기는 제격 이다...
임진강은 말없이 파란 주름살을 들어내며 흘러간다...
유난히도 소주를 좋아 하였던 동생은 술을 먹지 못하는 형을 배려하여 남대문에 오고 싶어도
일부러 안 왔다고 생전에 이야기 하였다...
남대문 시장에서 간단하게 배,사과,포,귤,소주한병을 사서 젯상을 차렸다....
작년 이맘때 유골를 뿌리고 난뒤 삼우제 때 소주한잔을 따를때에는 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올해는 잔잔한 바람이 콧 내음을 풍기게 한다...
13년된 갤로퍼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30분을 앉아 있다가 ...
임진강가를 왔다 갔다 서성이다 한방 찍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연세가 지긋히 드신 어른들이 낚시를 오셨다...
한쪽에선 아깝게 죽은 삶의 아쉬움을 달래려 임진강가에 와서 죽은이에 소주를 올리지만...
한쪽에선 삶의 뒤안길을 즐기면서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부지런히 낚시를 즐기신다...
멀리보이는 끝자락에선 작년에 이북에서 갑자기 물을 방류하는 바람에
임진강이 범람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던 곳...
서울에서 맛보지 못한 구름이 시원하게 흘러가는 모습 보았다....
굽이 굽이 휘돌아 가는 임진강가의 표정은 조용하다 못해 삭막하며 쓸쓸한 감이 밀려온다...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가해 보이는 여러주택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4월 한식 임진강가의 파란 하늘과 구름은 평화롭기만 하다...
국경선이 없고 휴전선과는 상관없이 제 마음대로 흘러가는 구름은
오히려 사람보다도 더 자유롭다는 생각을 가진다...
나는 구름에 가린 태양을 향하여 이 사진을 찍으면서 자갈밭에 30분이나 앉아 있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봄이오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지만 삶과 죽음의 차이는
태양과 구름이 바뀌는 잠깐의 차이였다...
일년만에 동생의 1주기를 맞이하여 동생을 위하여 매년 기제를 생각하며
임진강가에 올 자신은 나는 없다...
하지만 동생이 임진강가에 넋이 있다는것과...
어디에 유골을 뿌렸다는 것만 알아도...
동생에게 작게나마 미안함을 덜을 것이다...
오래간만에 임진강가에서 뭉게 구름을 쳐다보다 ..
흘러가는 강물에다 무언의 조각돌을 던지며..
말없이 높은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을 보았을때...
분명 우리는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나그네 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