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락지(金家樂地)팬션/김영택 화백 펜화기행

김영택의 펜화기행 3 - 수원 화성 장안문과 화홍문

청정남 2009. 7. 29. 11:51

제목: 김영택의 펜화기행 3 - 수원 화성 장안문과 화홍문
분류: 칼럼
이름: 김영택







 

김영택의 펜화기행 3-펜으로 되살린 문화재


수원 화성 화홍문과 장안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기능이 뛰어난 성입니다.
정조대왕의 의지와 실학자 정약용의 뛰어난 능력이 결합되어 세계적인 걸작품을 만든 것입니다.

  
   정조는 1789(정조13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읍치(邑治)인 화산으로 옮깁니다.
대신 수원 읍치는 팔달산 아래로 옮기고, 유수부로 승격을 시키며 성을 쌓고
행궁(行宮-왕이 거둥할 때 임시로 묵는 별궁) 등을 세웁니다.
유수부란 현재의 광역시와 비슷한 제도입니다.

   정조는 화성의 설계를 젊은 실학자 정약용에게 맡깁니다.
정약용은 임진왜란을 경험한 유성룡의 연구를 바탕으로 중국과 서양성의 장점을 따서
세계 최첨단의 성을 만듭니다.

  성문 앞에는 옹성(甕城)을 둘러 방어력을 높이고,
성의 일부가 바깥으로 튀어나온 치성(雉城)과 포루(砲樓)를 만들어
성벽을 오르려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한 노대(弩臺), 적을 살피기 위한 공심돈(空心墩) 등은
새로운 시설로 정조의 자랑거리였습니다.

  
   화성 공사 전체를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보면
그 치밀함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화성의 계획, 전체를 그린 조감도, 각 건물의 모양, 자재의 종류, 수량과 비용,
동원된 22종 장인들의 이름, 일한 장소, 일한 날짜,
지급한 급여 등이 상세하게 적혀있습니다.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대부분이 파괴된 화성을 제대로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화성이 역사가 짧은데도 불구하고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은
세계적으로 보기드믄 기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성은 기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습니다.
곳곳에 한국인의 미적 특성인 ‘선(線)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어
‘전쟁을 위해 만든 성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성안을 흐르는 강에도 멋진 수문을 만들었습니다.
북수문과 남수문이 있는데 북수문을 흔히 화홍문(華虹門)이라 합니다.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라는 뜻인데 현판 글씨도 보기드믄 명필입니다.
5개의 홍예로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멋진 누각을 올렸습니다.
조선 제일의 수문입니다.
옆 언덕 위 방화수류정과 함께 화성 최고의 볼거리로 손꼽습니다.

  
  1900년대 초의 흐릿한 사진을 바탕으로 화성성역의궤를 참고하여 복원도를 만들었습니다.
 화홍문 뒤편의 아름다운 노송이 눈길을 사로잡고,
장안문 앞에 초가집들이 정겹습니다.
장안문 앞에 몇 채의 초가집 외에는 성안이 온통 밭뿐이어서 현재의 모습과 너무 달라 보입니다.

 


penwhaga@hanmail.net